얼마 전 TV에서 2021년 나이스바디의 방관 달력을 소개하는 뉴스를 봤다.
모델로 나선 소방관들의 몸을 보면 모두 보디빌딩 선수 같다.
일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이만한 몸을 만들었으니 대단한 사람들이다.
보디빌딩은 몸이 정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운동이라고 하지만 모델로 선정되는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식이요법도 병행했을 것이다.
아마 닭가슴살을 물릴 정도로 먹었을 것이고, 유청 단백질(wheyprotein) 가루도 물을 타 수시로 마시지 않았을까.
필자도 몇 년 전 근육 감소가 걱정돼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유청 단백질을 먹어봤다.
그런데 건강식품 사이트에서 보니 유청 단백질과 함께 글루타민도 영양제로서 인기가 높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이는 시도하지 않았다.
20가지 아미노산이 인체근육과 비슷한 조성으로 들어있는 닭가슴살이나 유청 단백질과 달리 특정 아미노산 하나만 과다 섭취하는 것이 근육단백질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게다가 글루타민은 필수 아미노산도 아니기 때문에 부족하면 우리 몸이 만들어 쓸 수 있다.
암세포를 좋아하는 이유
단백질을 이루는 20가지 아미노산 중 하나인 글루타민 분자구조다.
에너지를 낼 뿐만 아니라 단백질과 핵산, 지질을 만드는 재료로도 사용할 수 있는 글루타민은 암세포와 근육줄기세포가 증식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키백과 제공 곳이 지난해 봄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한 리뷰 논문을 읽고 글루타민을 다시 보게 됐다.
논문은 정상세포와 암세포 대사 차이에 주목하고 암세포에 불리한 식이요법을 사용하면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최신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예를 들어 암세포는 포도당을 정상세포보다 훨씬 많이 필요로 한다.
따라서 개똥식(극단적인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처럼 포도당 섭취를 제한하면 암세포가 굶주림으로 허약해져 치료 효과가 커질 수 있다.
사실 이는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이어 전혀 몰랐던 이야기가 전개됐다.
암세포가 글루타민도 매우 좋아 역시 정상세포보다 훨씬 많이 소모된다는 것이다.
포도당과 글루타민은 다른 계열이지만 대사 관점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아 때에 따라서는 하나가 부족할 때는 나머지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포도당은 해당 과정을 통해 에너지 분자인 ATP를 만든다.
그런데 글루타민도 구조가 약간 바뀌면 이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핵산(DNA와 RNA) 벽돌인 염기를 만드는 데도 포도당 대사물과 글루타민이 필요하다.
세포의 산화환원 균형을 유지하는 데도 두 가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두 분자 모두 지질을 만드는 재료가 될 수 있다.
암세포가 에너지를 얻고 증식하는 데 포도당과 글루타민이 가장 공신이라는 얘기다.
저항(근력) 운동으로 근육량이 늘어나는 것은 위성세포(근육줄기세포)가 증식해 분화된 뒤 근육세포(근섬유)에 합쳐져 부피가 커지는 과정이어서 어떻게 보면 암세포의 증식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단백질뿐 아니라 핵산과 지질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고 에너지도 낼 수 있는 글루타민을 보충제로 섭취하면 근육을 늘리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암세포도 너무 좋아한다니 굳이 먹을 생각은 없지만.
저항운동이나 충격으로 근육이 스트레스(trauma)를 받으면 신호물질(DAMP)을 내보내 주변의 각종 면역세포를 끌어들인다.
근육 회복 과정은 상당히 복잡한데, 이 가운데 염증성 대식세포(M1-biased Macrophage. 파랑)가 핵심으로 위성세포(satellite cell)에 신호를 보내 증식하고(prolifeeration) 분화하도록(differentiation) 한다.
이때 대식세포가 만드는 글루타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네이처 리뷰스 면역학 제공 대식세포가 왜 근육에서 나오지?
‘네이처’ 11월 26일자에는 근육량을 늘리는 데 글루타민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힌 논문이 게재됐다.
다만 이때 글루타민은 음식이나 보충제를 통해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근육에 있는 대식세포가 만들어낸 것이다.
선천 면역계를 이루는 대식세포는 아메바가 연상되는 형태의 백혈구다.
이름 그대로 침입한 병원체를 먹거나 손상된 조직을 청소하는 식작용(phagocytosis)을 한다.
대식세포는 우리 몸 곳곳에 존재하지만 근육을 둘러싼 결합조직이나 혈관 주변에도 위치해 있다.
그런데 근육에 감염되는 병원체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다.
우리나라 근육에 있는 백혈구는 약 400억 개로 대부분 매크로파지와 (분화되면 매크로파지가 되는) 단핵구다.
참고로 혈액에 존재하는 백혈구는 4000억 개다.
그렇다면 대식세포는 근육으로 무엇을 할까.
연구 결과 근육이 늘어나거나 재생하는 데 대식세포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저항운동이나 손상으로 근육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대식세포가 활성화돼 염증반응이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잠자고 있던 위성세포가 깨어나 증식과 분화를 하면서 근육이 늘어나 상처가 회복된다는 것이다.
실제 대식세포를 무력화하는 약물을 처리하면 근육 스트레스에도 위성세포가 입을 다물고 있다.
벨기에 루반에 있는 암생물학센터 연구진이 주축이 된 유럽 공동연구자들은 매크로파지가 위성세포를 일으키는 데 글루타민이 연관됐을 수 있다고 가정했다.
근육의 대식세포가 글루타민을 만들어 분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대식세포에 있는 글루타민합성효소(GS)가 글루타메이트(아미노산 중 하나)와 암모니아로 글루타민을 만든다.
그런데 대식세포에는 글루타민산을 산화시키는 효소인 글루타민산데하이드로게나제1(GLUD1)도 있다.
글루타민산을 놓고 두 효소가 경쟁하면서 균형을 유지하는 시스템이다.
손상이나 저항운동 같은 근육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대식세포 GS 활성이 높아지고 그 결과 글루타민을 만드는 반응이 우세해진다.
이때 GULD1이 없으면 글루타민을 더 많이 만들고 그 결과 근육 재생 또는 증량이 더 효율적으로 일어나지 않을까.
연구자들은 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대식세포에서 그라운드1 유전자가 고장난 돌연변이 쥐를 만들었다.
그리고 근육에 손상을 주는 약물을 주사한 뒤 회복 속도를 일반 쥐와 비교했다.
그 결과 변이 쥐가 약물에 손상된 근육 비율이 낮고 회복 속도는 빨랐다.
실제 변이 쥐로 약물 주사 후 위성세포 수가 더 많아졌고 분화도 일찍 일어났다.
사람으로 치면 60세 노인에 해당하는 생후 18개월 된 쥐의 근섬유 단면사진으로 왼쪽이 정상 쥐이고 오른쪽이 그라운드1 유전자가 고장난 변이 쥐다.
변이 쥐는 근육의 대식세포가 글루타민을 더 많이 만들어내 근육노화(감소)가 늦은 것으로 보인다.
네이처 제공 연령이 되면 근육량이 줄어들지만 근육의 대식세포가 글루타민을 만드는 능력이 떨어진 것이 원인일 수 있다.
실제로 나이가 들수록 글루타민/글루타민산 수치가 작아진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 나이인 생후 18개월 된 쥐는 근육량이 한창인 쥐의 절반 수준으로 줄지만 변이 쥐는 감소폭이 이보다 적었다.
근섬유를 봐도 변이 쥐가 더 컸고 근섬유 간 공간의 글루타민 농도도 높았다.
그리고 줄기세포인 위성세포의 수도 더 많았다.
유전자를 잃어버린 실험동물의 결과가 인상적이지만 사람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유전자를 없애는 대신 그 산물인 GLUD1 효소의 활성을 억제하는 약물도 비슷한 효과를 보이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지난 2015년 개발된 R162라는 약물을 생후 18개월 된 쥐에게 한 달간 투여하자 근육조직의 글루타민 수치가 오르고 위성세포가 많아지면서 근육량이 늘었다.
반면 체중이나 다른 기관의 무게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논문 말미에 연구자들은 “현재 질병이나 노화로 인한 근육량 감소를 해결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며 “이번 연구는 약물로 이를 치료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논문 어디에도 글루타민 보충제에 대한 언급은 없다.
별 효과가 없어서일까.
중요한 것은 미세 환경
2000년대 근력운동을 했을 때 글루타민 보충제의 근육량 증진 효과를 보는 임상시험이 여러 건 있었지만 거의 유의미한 효과가 없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위궤양이나 에이즈 같은 근육 소모성 질환 환자에게 고농도 글루타민을 정맥 투여할 때 효과가 있었다는 결과는 있다.
보디빌 컨설턴트 로버트 시네츠키는 글루타민 보충제를 먹어도 위나 간, 장 같은 소화기관에서 소모되기 때문에 혈관을 거쳐 근육까지 도달하는 양은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암과 글루타민의 관계도 비슷하다.
암세포가 글루타민을 선호한다고 섭취를 줄여도 효과가 없다.
암세포는 아무래도 주변에서 글루타민을 끌어들이거나 글루타민을 만들도록 대사회로를 재설정해 살아남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이조절과 함께 미세환경인 암세포 주변에서 농도를 낮추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헬스장도 못 가고 집에서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따라하려 해도 잘 안 된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신경 써서 늘린 근육량이 다시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이번 기회에 몸짱 소방관 달력을 사서 벽에 걸고 홈트레이닝을 계속해야 한다.
※ 필자 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 카페』(1~9권), 『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에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